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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사의 기초

 

분명 책을 읽었는데 무슨 내용을 읽었는지 도무지 기억이 안 날 때가 종종 있다. 나에겐 전공서적이 특히 그랬다.

머리로도 이해하는데 시간이 걸리지만 페이지를 넘기다보면 이해했던 그 부분마저도 다시 보아야 기억날 뿐 또렷하게

새겨지는 느낌이 없었다. 특히 「상법」 을 공부할 땐 온갖 전문용어들이 난무했고, 그 하나하나의 용어가 연결되지 않으면

학습에 진척이 없었다. 아마도 그때 나는 필사를 처음 경험했다. 누군가 시킨 것이 아닌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수업이 마치고나면 도서관에 앉아 그 날 강의들은 내용과 책에 있는 내용들을 빼곡히 필사했고 놀랍게도 책에서 보았던

내용들이 하나도 잊히지 않고 기억에 잘 남았다. 처음 겪은 필사의 매력이었다.

 

 

나는 독서를 할 때 그 책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파악하기 위해 애쓰기도 하지만 작가 자체가 지닌

표현방법을 파악하기 위해 애쓰는 편이다. 같은 상황에 처해 있을 때 그것을 본  A작가와 B작가는 다른 표현을 한다.

또 그것을 뒤늦게 들은 C작가는 다른 표현을 할 수도 있다. 나는 책이 전하는 본질적인 메시지보다는 작가분들의

표현능력들이 참 부럽고 또 부럽다. 그저 지나가는 흔한 상황들도 문장으로 이끌어 낼줄 아는 그런 능력.

꾸준히 글쓰기를 하자고 늘 생각만하고 실천해 오지 못한 것은 '의지'의 부족이기도 했지만

내 머리속에 축적된 무언가가 없었다고 솔직히 말하고 싶다. 그래서 나는 필사를 결심했다.

책에서는 필사의 방법에서부터 필사를 해야 하는 이유, 필사에 필요한 것들을 가볍게 다루었다.

필사를 시작하기로 결심한 나에겐 해야하는 이유와 당위성에 대해 훌륭히 뒷받침해주는 근거가 될 것 같다.

 

 

작가님이 이야기하는 <필사를 사랑하는 몇가지 이유>

1. 오롯이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2. 차분한 마음을 얻을 수 있다.

3. 보고 듣는 것에 그치지 않고 손으로 쓰면 기억이 오래간다.

4. 돈이 거의 들지 않는다.

5. 경쟁할 필요가 없다.

+ 다산 정약용은 독서의 방법에는 다섯 가지가 있다고 했습니다.

두루 읽는 박학, 자세히 묻는 심문, 신중하게 생각하는 신사, 명백하게 분별하는 명변,

일고 성실하게 실천하는 독행입니다. 독행을 제외한 나머지 네 가지 독서의 방법을 제대로 실천할 수 있는 방법.

 

대체로 글이란 눈으로 보고 입으로 읽는 것보다 손으로 직접 한 번 써보는 것이 백배 낫다.

손이 움직이는 대로 반드시 마음이 따르므로, 20번을 읽고 외운다 하더라도 힘들여 한 번 써보는 것만 못하기 때문이다.

하물며 가장 중요한 내용을 밝혀낸다면 일을 살피는데 자세하지 않을 수 없고, 감추어진 이치를 반드시 끄집어낸다면

생각하는 것이 정확하고 세밀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또 그 가운데 같거나 다른 내용을 깊게 살피고, 옳고 그른 점을

판단해 의심 나는 곳을 기록한 다음에 잘잘못을 가리는 자신의 이론과 논리를 덧붙여 보라. 그렇게 되면 지혜는 더욱

깊어질 것이고, 마음이 누리는 안정은 더욱 단단해질 것이다.

- 이덕무 「사소절」에서 (P37)

 

필사를 단순히 '베껴 쓰기'라고 생각한다면 고정관념입니다.

필사는 결국 자기 글을 쓰기 위한 디딤돌입니다.

좋은 글을 베껴 쓰다 보면 '나의 글'을 쓰고 싶은 생각이 자연스레 듭니다.

필사가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쓰는 필사로 조금씩 나아갑니다.

(P85)

 

언젠가는 필사(筆寫)를 버리고 필사(筆思) 해야 할 때가 옵니다.

필사의 마지막 목적은 남의 글을 그대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나의 글을 쓰기 위한 훈련입니다.

당장 한 줄의 글도 쓰지 못한다고 해도 책상 앞에 앉아 있는 그 즐거움을 누릴 준비가 되었다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P87)

 

필사는 가장 순수한 독서라고 생각합니다. 책을 이룬 문장의 활자를 그대로 써서 옮기며 곱씹는 행위죠.

더디고 고통이 따르기도 합니다만 어떤 독서법보다 큰 만족감을 줍니다.

(P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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